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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 39 : 나날이 돌아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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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한남관광개발
작성일19-12-18 13:29 조회1,46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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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잔인한 달이란 시구로 유명한 T. S 엘리엇의 시 <황무지>는 그리스 남부 쿠마에 전해오는 무녀 시빌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한번은 쿠마에서 늙은 무녀가 조롱에 갇혀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아이들이 무녀에게 넌 뭘 원하니?” 하고 묻자 그녀는 대답했다. “죽고 싶어.”

 

눈부신 미모로 아폴로 신의 총애를 받던 무녀는 왜 그토록 간절히 죽음을 갈구하게 된 걸까요? 쿠마의 전설은 까마득한 먼 옛날 시빌이 모래알처럼 많은 날들을 살게 해 달라.’는 소원을 빌어 영생을 얻게 된 사연을 증언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소원엔 뼈아픈 실수가 있었죠. 자신의 젊음을 과신한 나머지 더 이상 늙거나 병들지 않게 해달라는 부탁을 빠트리고 말았던 겁니다. 그렇듯 싱그러운 육신이 늙고 병들어 하릴없이 추해질 수도 있다는 걸 젊은 날의 그녀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세월이 흐르자 영원할 것만 같던 무녀의 젊음은 꽃처럼 시들어버렸습니다. 향긋한 미소 대신 얼굴을 뒤덮은 흉측한 주름들과 갈수록 졸아드는 몸피 때문에 무녀는 결국 조롱에 갇혀 세상 사람들의 놀림거리가 돼버리고 말았죠. 영생은 이제 신의 축복이 아니라 영원히 끝나지 않을 형벌인 것입니다.

 

20세기 초입이던 1922, 천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엘리엇은 인류에게 정말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걱정했습니다. 무녀 시빌을 통해 시인은 죽음만이 삶의 희망일 수 있는 그 기막힌 역설이 무엇으로부터 시작됐는지를 돌아보라고 말합니다.

 

늙고 병약한 몸으로 조롱 속에 갇혀 살아야 하는 영원한 삶이 흙먼지로 뒤덮인 황무지보다 더 나은 것일까? 지금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 각자는 어떤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가을의 초입에서 내 삶에 정말 중요한 일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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